경빈 박씨 복성군 | 경빈박씨 묘 문정왕후
- 경빈박씨 복성군


경빈박씨는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본관은 밀양 박씨다. 아버지는 상주 지방의 한미한 사족 박수림이었다. 1506년 연산군 때 채홍사에 의해 발탁됐고, 중종반정 이후 중종의 후궁이 됐다. 처음에는 숙의, 이후 소의를 거쳐 1517년 정1품 경빈에 책봉됐다.


경빈박씨는 중종의 최고 총애를 받던 후궁이었다. 1515년 장경왕후가 사망한 뒤에는 왕비 후보로까지 물망에 올랐지만, 정광필 등 대신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결국 1517년 윤씨(문정왕후)가 계비로 간택되면서 두 여인의 숙명적 대립이 시작됐다.


경빈박씨는 1509년 중종의 서장자 복성군을 낳았다. 비록 서자였지만 중종의 맏아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컸다. 이후 혜순옹주(1512년)와 혜정옹주(1514년)도 낳으며 입지를 다졌다.


복성군의 존재는 문정왕후에게 위협이었다.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적자)과 복성군(서장자) 사이의 왕위 계승 갈등은 궁중 정치의 핵심 축이었다. 결국 이 대립은 경빈박씨 모자의 비극으로 귀결된다.


1527년 작서의 변이 터졌다. 세자(후의 인종)를 저주한 사건의 배후로 경빈박씨가 지목된 것이다. 증거가 불충분했음에도 경빈박씨는 폐서인되어 상주로 유배됐다. 이 사건의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는 지금까지도 논쟁 대상이다.


문정왕후 측이 작서의 변을 조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후에 진범이 김안로의 아들 김희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문정왕후, 정난정, 김안로의 합작으로 묘사하고 있다.


1533년 가작인두의 변이 발생했다. 사위 홍려가 연루되면서 경빈박씨가 다시 배후로 몰렸다. 결국 1533년 6월 25일(음력 5월 23일), 상주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경빈 사사 3일 후에는 아들 복성군도 사약을 받았다.


경빈박씨의 죽음은 조선 궁중 권력 다툼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훗날 세자(인종)가 복성군의 신원을 탄원해 1541년 복성군과 두 옹주의 신분이 회복됐다. 하지만 경빈 본인에 대한 공식 신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빈박씨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에 위치해 있다. 비운의 생을 마감한 후궁의 묘라는 점에서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 찾는 곳이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에서 도지원이 경빈박씨를 연기해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미지를 남겼다.


경빈박씨는 권력 앞에서 희생된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된다. 왕비가 될 수 있었으나 간택에서 밀렸고, 누명을 쓰고 아들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문정왕후와의 대립은 조선 중기 궁중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