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 하영 증조부


배우 하영의 가족사를 둘러싼 관심이 일제강점기 의료인으로 알려진 증조부 안상호 의사의 행적으로까지 번졌다. 하영은 앞서 방송을 통해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의료계에 종사한 가족사를 공개하며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배경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안상호 의사가 일제강점기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받는 대정친목회와 관련됐다는 자료가 알려지면서 역사 논란이 제기됐다. 논란의 핵심은 안상호 의사의 이름이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기록이다. 대정친목회는 대정실업친목회라고도 불리며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됐다.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융화를 표방하면서 실업 진흥과 교육, 문화 등을 내세웠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협조하고 일본의 동화정책을 뒷받침한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하고 있다.


대정친목회에는 관료와 경제인뿐 아니라 교육자,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 의료인 등 당시 사회의 유력 인사들이 참여했다. 특히 조선과 일본의 융화를 의미하는 ‘내선융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체로 거론된다.


안상호 의사는 근대 의료사에서도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서양의학을 익힌 의료인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들과 함께 진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고종의 사망과 관련해 안상호 의사가 독살에 관여했다는 이른바 ‘고종 독살설’에도 이름이 등장했다.



다만 해당 의혹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사실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록이나 증언을 근거로 제기된 의혹이 있는 만큼, 이를 확정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이기보다 관련 사료와 연구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일제강점기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추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안상호의 이름이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등재된 사실을 확인하고 기존 입장을 정정했다.



소속사는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입장을 밝힌 점에 대해 사과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가족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다 신중한 확인이 필요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 이로써 논란의 초점은 단순한 연예인 가족사를 넘어 당시 안상호의 활동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평가할 것인지로 확대됐다.


이번 논란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안상호 의사의 역사적 행적과 후손인 하영의 책임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안상호가 근대 의료 발전에 기여한 의료인이었다는 평가와 대정친목회 활동 등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한 역사적 비판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대의 행적을 후손에게 그대로 책임지우는 방식의 비판 역시 신중해야 한다. 하영이 증조부의 구체적인 활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이를 의도적으로 미화하거나 옹호했는지 여부 역시 별도로 확인해야 할 문제다.



결국 이번 논란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의 이면에 어떤 역사적 맥락이 존재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안상호 의사의 의료 활동과 대정친목회 참여 기록, 일제강점기 당시의 구체적인 행적을 각각 사료에 근거해 검토하고, 역사적 평가와 후손에 대한 비판은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