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별세 총리 사망
- 주룽지 별세


중국의 개혁·개방 시대를 대표하는 경제 관료인 주룽지(朱鎔基)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명의의 공동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이날 오전 11시 6분 베이징에서 병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당국은 구체적인 질병명이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투병 중 별세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주 전 총리를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공적을 기렸다.


주룽지는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백부의 손에서 성장했으며,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1947년 칭화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과 정치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1978년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을 시작으로 국가경제위원회 기술개조국장 등을 거쳤으며, 경제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덩샤오핑에게 능력을 인정받으며 중국 경제정책의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


1987년 상하이 시장에 취임한 뒤 경제와 행정 개혁을 추진했고,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올랐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원 총리를 맡아 중국 경제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주 전 총리의 대표적인 업적은 1990년대 중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높은 물가와 국유기업의 비효율성을 개선한 것이다.


당시 중국은 시장경제로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물가가 급등하고 국유기업의 부실이 확대되는 등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주 전 총리는 강력한 긴축정책과 금융·재정 개혁을 추진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동시에 국유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를 정리하는 등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섰다. 개혁 과정에서 실업과 노동자들의 생활고가 커지는 등 사회적 비용도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기업과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외 경제정책에서도 주룽지의 역할은 컸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을 주도하며 중국 경제의 세계시장 편입을 추진했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크게 확대했고, 이후 세계 제조업의 핵심 생산기지로 빠르게 성장했다. 주 전 총리는 시장 개방과 경쟁을 통해 중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주룽지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상하이 시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당시 상하이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자 TV 연설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후 정치적 안정과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무형 관료로 주목받았다.


다만 주룽지 역시 중국 공산당 체제 안에서 활동한 정치 지도자였다는 점에서 자유와 인권 문제를 둘러싼 중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톈안먼 사태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을 넘어선 독자적인 평가나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된다.


주 전 총리는 강한 추진력과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유명했다. 국유기업과 금융 개혁 과정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100개의 관’을 언급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주룽지는 중국 내외에서 강력한 개혁 성향의 경제 관료로 평가받았으며, 부패와 비효율을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 때문에 ‘철의 총리’라는 이미지도 얻었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만큼 부작용도 존재했다.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역과 계층 간 경제적 격차가 확대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장화 과정에서 발생한 부동산·금융 문제와 사회안전망의 부족 역시 주룽지 시대 개혁의 그늘로 거론된다. 주룽지 전 총리는 1990년대 중국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개혁을 밀어붙인 대표적인 지도자다.


인플레이션 안정, 국유기업 구조조정, 금융개혁, 행정개혁, WTO 가입 추진 등 그의 정책은 이후 중국 경제의 성장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일 98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주룽지는 중국 현대 경제사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게 됐다.


개혁의 성과와 사회적 비용, 중국 정치체제의 한계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지만,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경제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핵심 지도자였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