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 이완용 통역관 | 이인직 전범선
- 이인직 이완용





이인직은 한국 최초의 신소설을 남긴 작가로 문학사에 이름을 올렸고, 동시에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도 기록돼 있다. 근대 계몽기의 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와 을사·경술의 국권 상실 과정에 협력했다는 비판이 늘 함께 따라붙는다. 최근 후손인 가수 전범선의 방송 발언으로 다시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이인직은 1862년에 태어나 대한제국기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고 알려졌다. 일본 유학을 거치며 근대 문물과 정치 사상을 접했고, 귀국 이후에는 문필과 언론 활동에 무게를 두었다. 신문 지면과 문학 작품을 통해 이른바 개화와 계몽을 앞세운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인직은 대한신문의 주필을 맡아 당대 여론의 한복판에 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문 논조는 대체로 통감부의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학과 언론이라는 두 무대를 오가며 활동했으나, 정치권력과 가까웠던 행보가 이후 평가를 크게 갈라놓았다.


이인직 이완용 통역관이라는 설명은 후손 전범선의 어머니가 전한 표현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전범선은 방송에서 어머니가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대단한 친일파였고 이완용의 통역관이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단순한 문인이 아니라 병합 국면의 협력자로 기록됐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인직의 친일 행적은 오늘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로 이어졌다고 알려졌다. 국권이 무너지던 시기에 권력의 실세와 가까이서 움직였다는 점이 두고두고 문제로 지적돼 왔다. 문학적 성취와는 별개로 이 시기의 행적만큼은 여전히 냉정한 역사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인직의 대표작 혈의 누는 1906년 발표된 작품으로 한국 신소설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청일전쟁의 혼란 속에서 흩어진 가족과 한 소녀의 성장을 그리며 근대적 서사와 계몽 의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전소설과 근대소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문학사에서 다뤄진다.



이인직은 혈의 누 외에도 귀의 성, 치악산, 은세계 같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은세계는 원각사 무대에 올라 신연극의 소재로도 다뤄지며 근대 공연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다만 작품 곳곳에 스민 개화 논리가 당대의 친일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적 독해도 함께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인직의 후손으로 알려진 가수 전범선은 13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나와 가족의 내력을 다시 털어놓았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역사학을 전공한 전범선은 이인직이 외가 5대조, 즉 외할머니의 증조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까지도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전했다.



전범선은 이인직이 일본인 여성과 다시 결혼하며 본처 가족을 사실상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안이 혜택을 누린 적은 전혀 없고 어머니도 오랫동안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트라우마를 넘어서기 위해 역사서를 집필했지만 이인직만은 아직 책에 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