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치스코 교황 선종 사망 | 셀럽병사의 비밀
-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회에서 배출된 교황이자 아메리카 대륙과 남반구, 스페인어권에서 나온 첫 교황으로 기록된다. 2013년 즉위와 함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려 교황명을 정했고, 청빈과 낮은 자세를 상징하는 이 이름은 재위 12년 내내 흔들림 없는 지향점으로 남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오 남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무렵 폐병으로 오른쪽 폐 일부를 잘라내는 큰 고비를 겪으면서도 소명을 굽히지 않았다.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해 엄격한 수련 과정을 밟았고, 1969년 12월 33세의 나이에 사제로 서품되며 아르헨티나 교회의 새로운 일꾼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젊은 사제 시절부터 검소한 생활과 성실한 사목으로 주변의 신망을 쌓았다. 사제 서품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1973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맡아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았고, 신학 교수와 보좌주교를 거쳐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올랐다. 2001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되며 세계 교회의 중심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대주교 시절에도 관저의 호화로운 생활을 멀리한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손수 식사를 챙기는 검소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2013년 3월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으로 열린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남미 출신 최초의 교황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후반부에 무릎과 호흡기 질환으로 여러 차례 건강 이상을 겪으며 휠체어에 의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25년 초에는 폐렴 등으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았고, 위중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신자들 앞에 다시 서려는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회복의 기대와 달리 병세는 다시 악화됐고, 부활절 다음 날인 2025년 4월 21일 바티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뒤 돌이킬 수 없는 심부전이 겹치면서, 12년 재위를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전해졌다. 선종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길에는 검소함을 지켜온 삶이 그대로 반영됐다.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역대 교황들이 잠든 성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로마의 성모 대성전에 안장됐고, 장례 절차 역시 간소하게 치러지길 바란 뜻이 존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기간 내내 여러 '최초'의 기록을 세우며 가톨릭의 오랜 관행에 변화를 새겼다. 예수회 출신이자 아메리카 대륙 첫 교황이라는 상징성에 더해, 무슬림과 여성의 발을 직접 씻긴 첫 교황으로 이름을 남겼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열어 반나절 만에 팔로워 100만 명을 모을 만큼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사상은 여러 영상 작품을 통해서도 조명됐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의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를 둘러싼 두 성직자의 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내 배우 조너선 프라이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앞서 2018년에는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가 공개돼 육성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KBS2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 8월 18일 방송에서 다시 펼쳐진다. 오후 8시 30분 전파를 타는 이번 회차는 온화한 이미지 너머에 있던 교황의 결단과 개혁, 과거를 둘러싼 의혹까지 폭넓게 다룬다. 스튜디오에는 천주교 신자인 가수 바다와 진슬기 신부가 자리해, 신앙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교황의 선택과 의미를 풀어놓는다.



진슬기 신부는 방송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첫날 흰 수단만 입고 발코니에 선 장면을 두고 "전례 담당자의 실수가 아닐까 싶었지만, 곧 단호한 의지였음을 깨달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프로그램은 마피아 조직을 향한 파문 선언과 바티칸 은행 개혁,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협력 의혹을 추적한 탐사보도까지 촘촘히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