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가 | 천경자 그림 미인도 가격
- 천경자 화가 화백





천경자는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동양화가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그림을 배웠고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화단에 이름을 올렸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오래 재직하며 여인과 꽃, 뱀을 소재로 한 채색화를 남겼다. 1998년에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천경자의 대표 그림으로는 미인도와 생태가 꼽힌다. 1953년 부산 개인전에서 선보인 생태는 뱀 35마리를 한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이후 여인과 꽃, 이국의 풍경을 강한 색채로 그린 채색화를 이어갔다. 길례언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황금의 비 등이 대표작으로 전한다.



천경자 그림 미인도의 가격을 두고 궁금해하는 이가 많지만,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어 공식 매매가가 없다. 천경자의 다른 채색화는 경매에서 수억 원대에 거래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작 상당수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유족이 보유해 시중 유통 물량은 많지 않다.


천경자의 결혼은 두 차례로 알려졌다. 첫 남편 이철식과의 사이에서 장녀 이혜선을 두었고, 이후 언론인 김남중과 만나 차녀 김정희를 비롯한 자녀를 두었다. 여러 자녀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감당하던 시기에도 그림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천경자의 딸 김정희는 미술사 연구자이자 수필가로 알려졌다. 어머니의 삶과 미인도 논란을 다룬 글을 발표하며 작품의 진위를 둘러싼 입장을 밝혀 왔다. 유족은 미인도가 천경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생전 주장을 이어받아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은 1991년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전시 도록에 천경자 작품으로 실리자, 천경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제 자식을 몰라보는 어미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말로 진품설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는 미인도를 진품으로 발표했고, 천경자는 절필을 선언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1999년 위조범 권춘식이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증언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2016년 유족의 고소로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진위를 둘러싼 결론은 나지 않았다.


천경자의 별세는 2015년 8월 6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다. 향년 90세였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큰딸이 있는 뉴욕에서 요양하며 지냈다. 사망 소식은 별세 두 달여 뒤인 그해 10월 유족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천경자의 사망 원인은 뇌졸중에 따른 건강 악화로 전해졌다. 오랜 투병 끝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증받은 작품 93점으로 상설 전시를 이어가며 화백의 화업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