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단지 사건 |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 광주대단지 사건



55년 전 지금의 성남 땅에서 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번졌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산모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를 안은 손이 부엌으로 향했다는 말은 듣는 사람마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판잣집 골목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오는 8월 27일 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이 소문의 정체를 다시 꺼내 든다.



이야기의 무대는 1971년 광주대단지, 오늘의 성남시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시장 김현옥은 도심 판자촌을 철거하는 재개발을 밀어붙였고, 그 주민들을 광주대단지로 옮겼다. 문제는 순서였다. 개발이 먼저가 아니라 이주가 먼저였다.



트럭에 실려 짐을 이고 도착한 사람들 앞에는 흙먼지 날리는 허허벌판만 있었다. 수도도 전기도 없었고 병원과 교통시설, 일자리도 없었다. 삶을 꾸릴 최소한의 바탕이 통째로 빠진 자리에 사람만 던져진 셈이었다. 천막을 치고 하루를 버텨도 다음 날 먹을거리를 구할 길이 막막했다.



인육 괴담은 바로 이 진공 상태에서 자라났다.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나돌 만큼 굶주림이 깊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배를 곯는 하루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최악의 상상을 입에 담기 시작했고, 공포는 현실의 결핍을 먹고 몸집을 불렸다.



소문은 옆집 이야기가 되고 다시 아랫동네 이야기가 되면서, 누가 처음 꺼냈는지도 모르는 채 온 단지를 떠돌았다. 괴담은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당시 광주대단지가 어떤 벼랑이었는지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결국 거리로 나섰다. 1971년 여름, 수만 명이 생존권을 외치며 관공서로 몰려가 항의했다. 정부 수립 이후 도시 빈민이 벌인 첫 대규모 저항으로 꼽히는 사건이다.


인육 괴담이 사람들의 입에서 떠돌던 시기와 이 항쟁이 터진 시기가 맞물린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문은 단순한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 폭발 직전까지 밀려간 분노의 온도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꼬꼬무'는 이번 238회에서 괴담이 실제였는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광주대단지에서 퍼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파고든다. 방송은 8월 27일 오후 10시 20분에 전파를 탄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남규리, 윤병희, 이광기가 자리한다. 도시 개발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반세기 전의 소문이 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되살아나는지 그 이유와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