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재제청 요구 | 손봉기 대법관 임명 반려
- 청와대 재제청 요구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손 후보자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새로운 대법관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둘러싼 헌법기관 간 갈등이 정면으로 불붙는 모습이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헌법이 규정한 대법관 임명 절차와 삼권분립 원칙을 근거로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서로 다른 헌법기관에 배분된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청권이 대통령의 실질적인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특히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사전 협의를 거쳐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각 기관 간 권한을 상호 존중하라는 헌법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며 대법원이 기존의 협의 관행을 벗어나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제청한 데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로 손봉기 부장판사를 비롯해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판사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이후 7개월 넘게 후보자를 임명 제청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8일 청와대와 별도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손봉기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손 후보자 개인의 자질을 넘어 제청 과정 자체의 절차적 정당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청와대는 대법관 인선이 헌법기관 간 권한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야당은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독립적인 제청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청와대는 법원행정처가 손 후보자 제청 직전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후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을 타진한 사실도 문제 삼았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할 때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미 추천된 후보자들을 제청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개별 후보자에게 타진한 것은 인사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또 손 후보자의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대법관 임명인 만큼 결과뿐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 역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헌법 제104조를 언급하며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부정하고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제청과 임명 과정에 모두 개입하게 될 수 있다며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가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인사검증과 동의 권한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을 통해 후보자의 적격성을 판단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 역시 “제청권을 대통령의 임명권에 종속시키겠다는 순간 견제와 균형은 무너진다”며 청와대가 헌법이 정한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도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손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을 촉구했다.


청와대는 다만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조 대법원장이 함께 제청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두 후보자가 같은 날 제청됐음에도 청와대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만큼 향후 대법관 인선 절차는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성수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동의 절차를 밟게 되지만, 손봉기 후보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 여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대법관 한 명의 임명 문제를 넘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이 실제 인사 절차에서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헌법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은 헌법기관 간 충분한 협의와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고유한 제청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후보자를 재제청할지, 아니면 기존의 손봉기 후보자 제청을 유지할지가 향후 최대 변수로 떠오른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이번 충돌은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의 경계를 둘러싼 정치권과 헌법기관 간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