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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아들 연산군 경종 | 장희빈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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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표대믹 2026. 9. 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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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1
장희빈 아들 연산군 경종 | 장희빈 가계도

장희빈 아들 연산군 경종 | 장희빈 가계도

- 장희빈 아들

 

장희빈 가계도

장희빈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이자 제20대 왕 경종의 생모다. 본명은 장옥정, 본관은 인동 장씨로 1659년 역관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중인 신분으로 궁녀가 되어 왕비 자리까지 올랐다가 다시 후궁으로 강등됐고, 1701년 사약을 받고 생을 마쳤다. 궁녀에서 국모까지 올랐다가 폐위된 사례는 조선 왕실에서 장희빈이 사실상 유일하다.

 

  • 이름 : 장희빈(희빈 장씨)
  • 본명 : 장옥정(張玉貞)
  • 생몰 : 1659년 ~ 1701년, 향년 43세
  • 본관 : 인동 장씨
  • 당호 : 취선당(就善堂)
  • 아버지 : 장형(역관) / 어머니 : 파평 윤씨
  • 오빠 : 장희재
  • 남편 : 숙종(조선 제19대 왕)
  • 아들 : 경종(조선 제20대 왕), 둘째 아들 성수(요절)
  • 봉작 : 숙원 → 소의 → 희빈 → 왕비 → 희빈 → 옥산부대빈(추존)
  • 사망 : 1701년 사사(무고의 옥)
  • 묘소 : 대빈묘(경기 고양 서오릉)

 

 

장희빈 출생과 숙종의 총애

장희빈은 1659년 한성부에서 역관 장형과 파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형은 중국어를 다루는 사역원 역관 집안 출신으로, 전문 기술직이었으나 양반 사족과 구별되는 중인 계층이었다. 오라비 장희재는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장옥정은 어린 나이에 궁녀로 뽑혀 대왕대비 자의대비 조씨를 모시며 궁중 생활을 익혔다.

 

장희빈이 숙종의 눈에 든 시점은 1680년 첫 왕비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총애가 깊어지자 서인 세력과 왕실 어른들은 중인 출신 궁녀를 경계했고, 장옥정은 한 차례 궁 밖으로 쫓겨났다. 숙종은 몇 년 뒤 다시 불러들였다. 재입궁 뒤 총애는 더 커졌고, 1686년 숙원에 이어 소의로 봉해지며 정식 후궁의 지위를 얻었다.

 

장희빈 아들 경종과 연산군

장희빈의 아들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이다. 1688년 숙종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들 윤은 이듬해 원자로 정해졌고 1690년 세자로 책봉됐다. 1720년 왕위에 올라 1724년까지 재위했다. 장희빈은 1690년 왕비가 된 뒤 둘째 아들 성수도 낳았으나, 성수는 태어난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장희빈과 연산군을 잇는 시각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연산군은 조선 제10대 왕으로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1476년 태어났다. 장희빈보다 180여 년 앞선 인물이라 혈연도 시대도 겹치지 않는다. 어머니가 폐위된 뒤 사약을 받았다는 공통점 탓에 두 이야기가 뒤섞여 돌지만, 장희빈의 아들은 경종 한 사람이다.

 

장희빈 왕비 책봉과 환국

장희빈이 왕비에 오른 계기는 1689년 기사환국이었다. 숙종이 왕자 윤을 원자로 삼자 서인이 강하게 반발했고, 숙종은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을 등용했다. 이 과정에서 인현왕후 민씨가 폐위됐고, 1690년 장옥정은 왕비 책봉식을 올려 국모가 됐다. 후궁이, 그것도 중인 출신 궁녀가 왕비에 오른 것은 조선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장희빈의 왕비 자리는 1694년 갑술환국으로 무너졌다. 인현왕후 복위를 추진하던 세력이 정국을 다시 뒤집자 숙종은 입장을 바꿔 민씨를 복위시켰다. 장옥정은 왕비에서 다시 희빈으로 강등돼 창경궁 취선당으로 물러났다. 다만 세자의 생모라는 위치 덕분에 영향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장희빈 사약 죽음과 대빈묘

장희빈의 최후는 1701년 인현왕후의 죽음 직후 결정됐다.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무고의 옥이 불거졌고, 숙빈 최씨와 노론이 이를 문제 삼았다. 장희빈 측은 세자의 건강을 빈 것이라 해명했으나 숙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숙종이 자진을 명하면서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향년 43세로 생을 마쳤고, 오라비 장희재도 처형됐다.

 

장희빈의 명예는 아들 경종이 즉위한 뒤 일부 회복됐다. 경종은 1722년 생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했다. 왕후로 다시 올리지는 못했으나 왕의 생모로서 예우를 받았다. 묘소인 대빈묘는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안에 있으며,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가 함께 잠든 명릉과는 떨어진 자리에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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