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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평 아내 박선영 | 이웅평 보상금 행방 프로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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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표데믹 2026. 9. 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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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3
이웅평 아내 박선영 | 이웅평 보상금 행방 프로필 이혼

이웅평 아내 박선영 | 이웅평 보상금 행방 프로필 이혼

- 이웅평 아내 박선영

 

이웅평 프로필

  • 이름 : 이웅평
  • 출생 사망 : 1954년 9월 28일 ~ 2002년 5월 4일 (향년 48세)
  • 고향 : 평안남도 대동군 청계리
  • 가족 : 아내 박선영, 1남 1녀
  • 북한 경력 : 조선인민군 공군 상위, 1비행사단 책임 비행사
  • 남한 경력 : 대한민국 공군 대령, 공군대학 정책연구위원·교관
  • 안장 :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묘역

 

이웅평은 1983년 2월 25일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북한 공군 조종사다. 귀순 당시 나이는 29세, 계급은 상위였다. 남한에서는 공군 소령으로 임관해 1995년 대령까지 진급했고, 공군대학에서 정책연구위원과 교관을 맡았다. 2002년 5월 4일 간기능부전으로 세상을 떠나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묘역에 안장됐다.

 

미그기 귀순

미그기 귀순은 1983년 2월 25일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하면서 시작됐다. 로켓 사격 훈련에 나선 편대에서 이탈해 저고도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고, 연평도 상공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수원기지에 착륙했다. 미그19 전투기 한 대가 그대로 남한 영공으로 들어온 이 장면은 냉전기 군사 대치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귀순을 결심한 계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해변에 떠내려온 라면 봉지다. 봉지에 적힌 '변질이나 훼손된 제품은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남한 사회를 동경하게 됐다. 소비자를 배려하는 짧은 문장 한 줄이 체제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고, 결국 조종간을 남쪽으로 돌리는 선택으로 닿았다.

 

아내 박선영 이혼

아내 박선영과의 인연은 귀순 이듬해인 1984년 11월 2일 결혼으로 이어졌다. 박선영은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이었고, 부부는 신변 안전을 이유로 공군 관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남 1녀가 있었다.

 

신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선영은 관사 생활 도중 집 안에서 도청장치를 발견했고, 감시와 도청이 신혼집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에 항의하며 이혼을 선언했다. 귀순 영웅이라는 공식 이력 뒤에서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통제의 무게가 이 대목에 담겨 있다.

 

보상금 행방

귀순 보상금은 미그19 전투기 값 등을 합쳐 15억 6000만 원이었다. 1983년 물가를 감안하면 개인에게 지급된 보상으로는 최고 수준의 액수였다. 귀순 이후에는 반공 강연자로 나서 한 해 900회가 넘는 강연과 행사에 참석했다. 대중 앞에 서는 일정이 그만큼 빼곡했다.

 

15억 6000만 원의 행방은 오랜 기간 궁금증으로 남았다. 거액을 받은 초기의 화제와 달리 2002년 사망 이후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정리된 기록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이 돈의 사용처가 이번 방송에서 다시 다뤄지는 핵심 소재다.

 

꼬꼬무 재조명

이웅평의 이야기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2026년 9월 3일 다시 소개된다. 방송은 1983년 미그19기 귀순 장면부터 15억 6000만 원 보상금, 공군 관사 도청과 이혼까지 시간 순으로 짚는다. 반공 아이돌로 불리던 이력의 안팎을 나란히 풀어낸다.

 

이번 회차에는 아내 박선영이 직접 출연해 관사에서 발견한 도청장치와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심경을 밝힌다. 귀순 영웅이라는 공식 기록 뒤에 놓였던 가족의 시간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방송은 3일 밤 10시 20분에 편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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