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만 딸 사망 이혼
- 배영만 딸 사망 이혼


코미디언 배영만이 어린 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뒤 부부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혼하게 된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공개했다. 딸의 죽음 이후 무너진 가정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이혼 후 세 자녀를 홀로 키워온 시간도 털어놨다.


지난 3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배영만의 근황과 그동안 쉽게 꺼내지 못했던 가족사가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배영만은 약 20년 전 아내와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어린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언급했다.


배영만은 당시를 떠올리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쓰러져 있다고 하더라”며 병원으로 달려갔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병원에 갔더니 응급실에 아내는 쓰러져 있고 아기는 죽어서 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더욱 큰 충격은 평소 아무런 이상 없이 지냈던 어린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배영만은 “아침에 빵긋 웃던 딸이 죽었다는 거다. 그때부터 갈등이 엄청 심해졌다”고 고백했다. 딸을 잃은 슬픔은 부부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가 됐다.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견뎌내야 했지만 오히려 깊은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가정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배영만은 “가정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아이 하나 잃은 게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것”이라며 당시의 참담했던 심경을 전했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포용하고 갔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같이 있으면 힘드니까 어쩔 수 없이 갈라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혼 이후 배영만에게는 남은 자녀들을 홀로 키우는 일이 또 다른 책임으로 남았다. 배영만은 “아이들은 내가 다 맡아서 키우게 됐다”며 세 자녀를 직접 양육해온 시간을 돌아봤다.


1959년 12월 13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배영만은 1983년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방송계에 데뷔했다. 특유의 말투와 코미디 연기로 1980~1990년대 방송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일요일 밤의 대행진’, ‘청춘행진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배영만은 군 복무 시절 북한의 대남 선전 전단인 삐라에 자신의 사진이 등장했던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후 방송과 연기 활동을 이어가며 대중에게 웃음을 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둘러싼 큰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현재 자녀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배영만은 둘째 딸에 대해 “시집을 잘 갔다. 부러울 정도의 부부”라고 전했으며 막내 역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자녀는 큰아들 배강민이었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배강민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자신의 꿈을 좇았고, 한때 부자간 갈등이 깊어져 집을 나가기도 했다.


배영만은 “큰아이에게 기대를 너무 많이 걸었다. 항상 큰아이만 채찍질했다”며 과거 자신이 아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점을 인정했다. 현재는 다시 얼굴을 보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들의 결혼 문제를 두고 또 다른 고민도 털어놨다.


배강민이 일본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배영만은 경제적인 부분 등을 걱정했다. 이에 배강민은 “손 벌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빠는 준비가 다 돼서 결혼했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방송에서 배영만은 집에 돌아와 자녀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보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가정을 끝까지 지켜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배강민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품었던 감정을 고백했다. “다 아버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망스러웠다”고 털어놓으며 당시의 상처를 돌아봤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배영만에게 딸의 죽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부부 관계가 무너졌고, 이혼 뒤에는 세 자녀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이날 방송은 웃음을 전하던 코미디언 배영만의 이면에 있었던 깊은 가족의 상처와 뒤늦은 후회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