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
- 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


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은 1994년 5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에서 일어났다. 당시 23세이던 박한상이 자신을 키운 친부모를 흉기로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 재산을 노려 부모를 해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사건은 전국으로 빠르게 번졌다. KBS 뉴스 앵커는 "부부를 살해하고 불까지 지른 범인은 바로 그 집 큰아들이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존속살해라는 범행의 성격이 사회에 준 충격은 컸다. 자식이 부모를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방화까지 동원해 증거를 없애려 한 수법이 알려지자 가정과 물질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사건은 이후 여러 시사·범죄 프로그램에서 반복해 다뤄졌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존속살해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부모의 재산을 겨눈 냉정한 계획성 때문에 오랫동안 회자됐다.


박한상은 1971년에 태어났다. 아버지 박순태는 서울 경동시장에서 약재상을 운영했고, 어머니 조순희와 함께 부족함 없는 살림을 꾸렸다. 장남은 부모의 지원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학업보다 도박과 유흥에 빠져 지냈다. 부모가 자동차를 사라며 보낸 1만 8천 달러마저 도박으로 모두 잃었고, 유학 생활은 빚만 남겼다.



미국에서 진 빚이 범행의 배경이 됐다. 사채로 빌린 2천만 원은 이자가 붙어 3천7백만 원까지 불어났다. 불량배와 어울리고 미혼모 문제를 일으키는 등 말썽이 반복되자 부모는 의절을 선언했다. 고급 승용차를 사주지 않고 호되게 야단친 부모에게 앙심을 품은 것이 살해 결심으로 이어졌다. 유산을 손에 쥐려는 계산도 범행 동기에 얽혀 있었다.


범행은 1994년 5월 19일 새벽 삼성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혈흔을 몸에 남기지 않으려고 알몸에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 채 부모의 침실로 들어갔다. 양손에 등산용 칼을 하나씩 나눠 쥐고 잠든 부모를 찔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40여 군데 자상을 입고 침실에서 숨졌다. 계획된 시각과 도구가 범행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부모를 살해한 뒤에는 흔적을 지우는 데 매달렸다. 샤워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집 안에 불을 질러 화재로 꾸미려 했다. 당시 집에 함께 있던 이종사촌 동생은 화상을 입은 채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불은 주거지를 태웠고, 현장은 초기에 단순 화재 사고처럼 보이도록 조작됐다. 방화는 증거 인멸을 노린 마지막 단계였다.


수사는 강남경찰서가 맡았다. 박한상은 화재 사고로 위장한 채 부모의 장례식에서 통곡하며 유족 행세를 했다. 그러나 몸에 남은 흔적이 진술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치료를 맡은 간호사가 머리에서 타인의 혈흔을 발견했고, 이 증언이 수사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슬퍼하는 연기와 달리 몸이 범행을 가리켰다.



결정적 단서는 몸에 남은 상처였다. 저항하던 어머니가 물어뜯은 발목의 잇자국이 어머니의 치열과 정확히 일치했다. 화재로도 지워지지 않은 물증이 범행을 뒷받침했다. 위장과 연기에도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했고, 박한상은 범행 엿새 만에 붙잡혔다. 스스로 감추려 한 방화가 오히려 몸에 화상을 남겨 발목을 잡았다.


재판은 존속살해 혐의로 진행됐다. 1심과 항소심은 나란히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1995년 8월 25일 사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형을 피할 명분을 찾으려 고심했으나, 부모가 살아 있었다면 사형에 반대했으리라는 추측 외에는 감형 사유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계획성과 잔혹함 앞에서 최고형이 내려졌다.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한국은 1997년을 끝으로 사형 집행을 멈췄고, 박한상은 대구교도소에서 30년 넘게 수감 상태로 남아 있다. 존속살해는 형법상 일반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된다. 재산을 노린 범행이었으나 민법 제1004조에 따라 상속 자격을 잃어, 부모가 남긴 재산은 남동생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