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사망 명언 파킨슨 병
- 무하마드 알리 사망


가수 이찬원이 진행하는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비운의 삶이 조명되며 다시 한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무하마드 알리는 화려한 챔피언의 삶 뒤에 병마와 가족 갈등, 사회적 투쟁이라는 굴곡진 인생을 안고 살아간 인물이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단순한 복싱 챔피언이 아니었다. 현란한 스텝과 빠른 스피드, 강력한 펀치, 그리고 독보적인 쇼맨십을 갖춘 선수로 세계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라는 명언은 지금도 스포츠계 최고의 명언으로 남아 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한 뒤 프로에 입문한 무하마드 알리는 1964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이후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소니 리스턴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의 명승부를 통해 복싱 황제로 군림했다.
흑인 인권운동과 베트남전 병역 거부


무하마드 알리의 삶은 링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4년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본명인 캐시어스 클레이를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특히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사건은 알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알리를 강하게 비난했고, 챔피언 타이틀 박탈과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전성기 시절 무려 3년 넘게 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알리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훗날 미국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알리의 행동은 양심적 저항으로 재평가됐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파킨슨병과 싸운 말년


영광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펀치를 맞으며 뇌 손상이 누적됐고, 은퇴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손이 떨리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점차 심해졌지만 알리는 병과 싸우며 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떨리는 손으로 성화에 불을 붙이며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겼다. 이 장면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무하마드 알리는 2016년 6월 3일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


당시 알리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패혈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파킨슨병 투병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알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정상과 스포츠 스타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네 번의 결혼과 아홉 명의 자녀


무하마드 알리는 화려한 복싱 경력만큼이나 복잡한 가족사를 남겼다. 알리는 생애 동안 네 차례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손지 로이였으며, 두 번째 부인 칼릴라 알리와의 사이에서 아들 무하마드 알리 주니어와 세 딸을 얻었다.


세 번째 부인 베로니카 포르쉐와의 사이에서는 딸 라일라 알리가 태어났다. 라일라 알리는 훗날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마지막 부인 욜란다 윌리엄스(로니 알리)는 알리 곁을 지키며 그의 투병 생활을 함께했다. 알리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자녀만 9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망 이후에도 친자 확인과 유산 분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전 부인 폭로로 다시 불거진 유산 논란


최근에는 전 부인 칼릴라 알리의 인터뷰가 공개되며 다시 화제를 모았다. 칼릴라는 영국 매체 인터뷰에서 “일부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가 무하마드 알리의 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친자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를 권유했지만 상당수는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칼릴라는 “알리의 명성과 유산 때문에 친자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알리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의 이름을 둘러싼 유산 분쟁과 친자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