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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대마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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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표대믹 2026. 9. 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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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2
송창식 대마초 사건

송창식 대마초 사건

- 송창식 대마초 사건

 

송창식 대마초 사건

가수 송창식이 1970년대 가요계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 당시 자신이 가장 먼저 수사 대상이 됐던 사연을 털어놓습니다. 특히 대마초를 하지 않았음에도 사건 이후 동료 가수들을 밀고했다는 오해를 받으며 뜻밖의 후폭풍을 겪었다고 밝혔습니다.

 

12일 방송되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지난주에 이어 송창식과 정미조가 출연합니다. 이날 방송에서 두 사람은 대마초 사건과 갑작스러운 은퇴 등 가수 인생에서 겪었던 주요 전환점을 돌아봅니다.

 

송창식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마초 사건이 터졌을 때 제일 처음 나한테 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대마초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사관들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대마초 싫어했다” 송창식의 해명

송창식은 자신이 오히려 대마초를 경계했던 가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마초를 하면 음정이 불안정해지는 등 노래를 하는 가수에게 치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도 송창식은 대마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혔습니다. 당시 그는 “나는 대마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송창식에 따르면 당시 다른 가수들이 대마초를 피우던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자신은 대마초를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다른 사람이 다 너랑 했다는데 왜 너는 안 했냐”고 물을 정도로 의심을 받았지만, 대마초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먼저 풀려난 뒤 ‘밀고자’ 오해

문제는 수사 이후였습니다. 송창식이 가장 먼저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다른 가수들이 잇따라 조사를 받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오해가 생겼습니다. 송창식은 “내가 밀고해서 명단이 나왔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자신이 동료들의 이름을 수사기관에 전달했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방송에서도 송창식은 이와 관련해 자신에 대한 보도로 평판이 이상해졌다고 밝혔습니다. 대마초를 하지 않아 풀려나 방송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오히려 가수들 사이에서는 ‘밀고자’로 오해받으며 미움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1975년 가요계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

송창식이 언급한 대마초 사건은 1975년 말 연예계를 강타한 대마초 파동입니다. 당시 신중현, 조용필, 윤형주, 이장희 등 당대 유명 가수들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요계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송창식 역시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됐지만 대마초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사건에서 벗어난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가수들이 잇따라 조사를 받자 자신이 동료들을 밀고했다는 오해까지 뒤따랐습니다.

 

노숙 생활에서 가요계 거장으로

송창식의 대마초 사건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과거 방송에서 ‘쎄시봉’ 이전에는 노숙자 생활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가 재혼한 뒤에는 어린 동생과 함께 친척 집을 전전했습니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고등학교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역에서 약 2년 동안 겨울을 보내기도 했고,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쫓겨난 송창식은 밥을 주고 빨래도 할 수 있었던 음악다방 쎄시봉으로 향했습니다.

 

특히 친구 이상벽의 도움으로 쎄시봉에 들어간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습니다. 그곳에서 조영남을 만났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1967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를 결성한 송창식은 1968 앨범을 통해 데뷔했고, 1970 솔로 가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피리 부는 사나이’, ‘ 불러등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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