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근 프로필 | 곽종근 1심 선고 징역 9년
- 곽종근 프로필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징역 18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징역 15년,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2년,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은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특히 곽 전 사령관은 다른 군 지휘관들과 달리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여러 차례 계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면서 사건의 진실 규명에 협조해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는 21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군 지휘관 5명에 대한 1심 선고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헌법기관의 권능을 무력화하거나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며 군 최고 지휘관들이 군사력을 위법하게 동원한 책임을 무겁게 판단했다. 곽 전 사령관에게는 특검이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곽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특전사 병력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출동시킨 혐의를 받았다.


선고를 앞두고 곽 전 사령관에게는 이례적인 선처 요청도 이어졌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유족과 생존자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고 곽 전 사령관의 형량을 정할 때 범행 이후의 태도와 진실 규명 협조 등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5·18 피해자 측은 곽 전 사령관의 병력 출동 책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증언한 점을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일부 탄원에서는 1980년 광주에 곽 전 사령관과 같은 태도를 보인 군 지휘관이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


곽 전 사령관이 다른 피고인들과 비교해 주목받은 부분은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였다. 곽 전 사령관은 법원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했고, 보석을 신청하면서도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군사법원은 2025년 4월 곽 전 사령관의 보석을 허가했다. 당시 법원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곽 전 사령관만 구속된 군 고위 지휘관 가운데 유일하게 보석으로 석방됐다.


또 국회 국정조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등에 출석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증언은 이후 계엄 당시 군 병력의 움직임과 지휘 체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다만 곽 전 사령관이 혐의를 인정하고 진실 규명에 협조했다는 점이 형사책임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과 책임 정도, 범행 이후 태도 등을 종합해 형량을 판단하게 된다. 이번 1심에서도 선처 탄원과 사후 태도뿐 아니라 실제 병력 출동과 지휘 과정에서 맡은 역할이 함께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1968년생으로 알려졌으며 육군사관학교 47기 출신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에는 육군특수전사령관으로 근무하며 중장 계급을 달고 있었다. 당시 계엄군을 실제로 움직인 핵심 지휘관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됐다. 육사 47기인 곽 전 사령관은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보다 한 기수 후배였고,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이진우 전 사령관은 육사 48기였다.



군 경력 초반에는 대통령경호처 정보작전장교를 거쳐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보좌관, 육군보병학교 전술학 교관 등을 지냈다. 이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처장 등을 거치며 작전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2023년에는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전작권전환추진단장을 맡았고 같은 해 중장으로 진급한 뒤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올랐다.


12·3 비상계엄 당시 특전사는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등을 국회에 투입했다. 곽 전 사령관은 특전사 병력의 출동과 작전을 지휘한 책임자로 수사와 재판의 핵심 대상이 됐다. 당시 특전사와 수방사 등 계엄 병력을 실제로 움직인 주요 지휘관들은 대부분 육사 출신이었다.



결국 곽종근 전 사령관은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군 병력을 국회 등에 투입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인정받았지만,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계엄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진실 규명에 협조한 태도, 그리고 5·18 유족과 생존자들까지 선처를 요청한 점 등이 이번 재판에서 함께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