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계획 울산 돼지국밥 수육 | 울산 하동식당
- 전현무계획 울산 돼지국밥


전현무계획4 15회 '디스 이즈 울산 로드'가 2026년 10월 9일 전파를 탔다. 전현무와 배우 이준이 울산 동구를 돌며 들른 노포가 하동식당이다. 동해안로 조선소 밀집 지역에 자리한 돼지국밥집으로, 1981년 문을 연 뒤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국밥솥을 지켜 왔다. 간판에는 국밥솥 불을 꺼뜨린 적이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어 오래된 영업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동식당은 울산 3대 국밥집으로 꼽힌다. 돼지 뼈와 내장을 오랜 시간 푹 고아 낸 걸쭉한 육수가 간판이다. 조선소 교대 근무자들이 주 고객층으로, 출근 전 아침과 퇴근 후 저녁에 국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며 단골이 됐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소 상권이라,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뜨끈한 국밥집은 하루를 시작하는 자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국밥솥에 불이 올라 있는 노포 풍경이 식당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에서는 송송 썬 파와 고춧가루가 넉넉히 올라간 국밥, 큼직하게 썬 수육이 화면에 담겼다. 번듯한 인테리어나 넓은 매장 없이 국밥솥과 좌석만 놓인 전형적인 동네 국밥집이다. 울산 동구 조선소 상권에서 밥때마다 사람이 몰리는 식당이라, 방송 전부터 지역 손님 사이에서는 국물 진한 돼지국밥집으로 통했다. 전현무와 이준도 울산 로드 코스에서 아침 국밥 한 그릇으로 하루를 여는 동구 사람들의 끼니를 그대로 따라갔다.




하동식당은 동해안로변에 있어 현대중공업과 조선소 일대에서 접근하기 쉽다.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아침부터 국밥을 내고 밤 9시까지 영업해 교대 근무자와 늦은 저녁 손님까지 받는다. 울산 시내에서 차로 이동하면 동구 방향으로 들어와 바닷가 쪽 도로를 끼고 찾아가는 동선이 편하다.


아침 식사 시간대와 점심에는 조선소 직원 손님이 몰려 자리가 금방 찬다. 이른 아침 7시대나 오후 2시 이후처럼 피크를 비껴 가면 기다림이 짧다. 혼자 와서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가는 손님이 많아 1인 방문도 부담이 없다. 포장이 되므로 숙소나 작업장으로 가져가 먹기에도 맞는다.




돼지국밥은 내장과 살코기, 둘을 합친 섞어 중에 고른다. 내장과 살코기는 한 그릇 1만 원, 섞어는 1만 1천 원으로 울산 노포 국밥 시세에 맞는 가격대다. 국물은 돼지 뼈와 내장을 오랜 시간 푹 고아 뽀얗다기보다 걸쭉하고 진한 쪽이다. 고기와 내장을 잘게 썰어 넣어 밥알에 국물이 잘 배고, 간이 어느 정도 맞춰져 나와 토렴한 국밥처럼 숟가락을 바로 댈 수 있다. 내장을 못 먹는 손님은 살코기국밥, 내장 특유의 식감을 즐기는 손님은 섞어국밥으로 나뉜다.


수육은 두 종류로 각각 2만 원이다. 살코기 수육은 얇게 저며 촉촉하게 내고, 내장수육은 큼직하게 썰어 쫄깃한 식감을 살린다. 두 수육 모두 비법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구성이라, 국밥과 함께 상에 올리면 둘이 나눠 먹기 좋은 한 상이 꽉 찬다. 국밥만으로 아침을 때우던 단골도 손님과 함께 오면 수육을 추가해 반주 안주로 삼는다.


아침 7시에 맞춰 문을 열고 들어가 섞어돼지국밥을 시켰다. 앉자마자 큼직한 깍두기와 무김치가 먼저 깔렸고, 곧 송송 썬 파와 고춧가루가 올라간 국밥이 나왔다. 국물을 한 술 떠보니 걸쭉하고 진해 뼈와 내장을 오래 고았다는 설명이 바로 와닿았다. 간이 맞춰져 있어 양념을 더 넣지 않고 그대로 떠먹었다.


잘게 썬 고기와 내장이 밥알과 함께 올라와 숟가락질이 빨라졌다. 새콤하게 익은 무김치를 중간중간 곁들이니 진한 국물이 개운하게 정리됐다. 깍두기는 큼직해서 한 입에 베어 물면 국밥의 묵직한 맛을 끊어 주는 역할을 했다. 옆자리에서 작업복 차림 손님들이 말없이 국밥을 비우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40년 동안 조선소 사람들의 끼니를 책임져 온 집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다음에는 돼지수육을 추가해 둘이서 나눠 먹어보고 싶다. 얇게 저민 살코기 수육을 비법 간장 소스에 찍어 국밥과 번갈아 먹으면 한 끼로 충분할 듯했다. 내장수육의 쫄깃한 식감이 궁금해 섞어국밥 대신 내장수육을 따로 시켜보는 것도 다음 숙제로 남겨 뒀다. 1만 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반찬까지 더해지니 가격도 수긍이 갔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국밥솥에서는 여전히 김이 오르고 있었고, 아침 손님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