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단 뜻 | 김귀정 압사사건 김민전 백골단
- 백골단 뜻



백골단은 1980~1990년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시위 진압과 시위 참가자 검거를 전담한 경찰 기동 인력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정식 편제 명칭이 아니라 거리에서 붙은 이름으로, 하얀 헬멧에서 그 명칭이 비롯됐다. 헬멧의 색이 멀리서도 백골처럼 도드라져 시민들이 백골단이라 불렀다.
복장부터 기존 진압 부대와 달랐다. 방패와 방석모로 중무장한 전경 대열과 달리 백골단은 청색 재킷에 청바지, 흰 헬멧 차림의 가벼운 복장으로 움직였다. 손에는 큰 방패 대신 작은 방패와 단봉을 들었고, 현장에 따라 쇠파이프나 철심을 박은 죽도 같은 장비까지 동원했다. 무게를 덜어낸 복장은 곧 기동성을 뜻했다.



전술의 핵심은 속도와 침투였다. 백골단은 가벼운 몸으로 시위 현장에 빠르게 돌진해 대열을 끊고, 흩어진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참가자를 끝까지 쫓아가 붙잡았다. 퇴로를 막은 채 좁은 공간으로 시위대를 몰아넣는 이른바 '토끼몰이식' 진압이 전형이었다. 이 방식이 1991년 봄 두 대학생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김귀정은 1966년 8월 11일 경기도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무학초등학교와 한양여자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88년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고, 복학 뒤 교내 심산연구회에 가입해 회장을 맡았다. 1991년 5월 25일 '고 강경대 열사 살인 만행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 제3차 범국민대회'에 24세의 나이로 합류했다.
집회가 열린 곳은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앞 퇴계로 일대, 진양상가 부근이었다. 경찰은 시위대의 퇴로를 끊은 채 무차별로 최루탄을 쏘며 토끼몰이식 진압을 밀어붙였다. 공포에 질린 인파가 폭 4m 남짓한 좁은 골목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터졌고, 김귀정은 넘어진 뒤 짓밟힘과 최루가스 속에서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숨졌다.



사건 직후 정권과 경찰은 사인을 시위대에 떠밀린 압사나 단순 쇼크사로 돌리려 했고, 시신을 가져가 부검하려 시도했다. 성균관대 학생과 시민들은 병원을 지키며 공권력과 맞섰고, 유족과 대책위가 참여한 부검 끝에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질식사가 확인됐다.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판례 95다23897).



백골단이라는 이름은 두 시대에 걸쳐 등장했다. 첫 번째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기다. 당시 백골단은 정치 깡패 집단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폭력과 공포를 수단 삼았다. 반대 세력을 억누르고 관제 데모를 주도했으며,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도 동원됐다.
두 번째가 널리 각인된 1980~1990년대 전두환·노태우 정권기의 사복 경찰 진압 부대다. 민주화 요구가 거리를 메우던 시기, 백골단은 최루탄과 단봉, 쇠파이프를 앞세워 집회를 해산하고 참가자를 검거하는 전위에 섰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은 전국적 분노에 불을 댕겼고, 한 달 뒤 김귀정의 죽음으로 분노는 더 커졌다.



연이은 죽음과 거센 저항 속에서 토끼몰이식 진압과 백골단 운용은 사회적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1990년대를 지나며 사복 체포조 중심의 강경 진압 방식은 사실상 거리에서 사라졌고, 백골단은 권위주의 통치의 폭력성과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사에 기록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름이 2025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극우 성향 청년 단체가 윤석열 대통령 지지 조직인 '반공청년단'의 하부 조직을 자처하며 스스로를 백골단이라 칭하고 활동을 예고하면서다. 하필 국가 폭력의 표상으로 각인된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자, 명칭 자체가 곧바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반발의 핵심은 백골단이 담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다. 강경대와 김귀정의 죽음, 토끼몰이식 진압과 시신 탈취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폭력이 그 이름에 새겨져 있는 탓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들을 기억하는 쪽에서는 가해의 상징을 스스로 내건 작명 자체가 역사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백골단을 둘러싼 2025년의 논쟁은 단순한 명칭 시비에 그치지 않는다. 1991년 퇴계로의 좁은 골목에서 스러진 24세 청년과, 흰 헬멧을 쓴 채 거리를 내달리던 진압 부대의 기억이 여전히 유효한 현재의 질문임을 보여준다. 이름 하나가 다시 불려 나오자 수십 년 전의 죽음과 책임 소재가 함께 소환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