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황찬희 | 무속인 가수 황찬희 나이 남편
- 가수 황찬희 무속인





황찬희는 신을 모시는 무당이면서 무대에 오르는 가수다. 전북 군산에서 작두를 타며 신당을 지키는 동시에, 군산시민예술단 단원으로 노래를 부른다. 2025년 8월 KBS1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무속인 신분을 처음 밝히고 트로트를 불러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MBN 특종세상이 신병과 신내림, 다시 가수로 돌아오기까지의 사연을 다뤘다. 무당과 가수라는 두 길을 한 사람이 걷는 모습 자체가 황찬희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노래를 향한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중학생 때 라디오 노래자랑에 나가 장원을 차지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스무 살 무렵 성인이 되어서는 군산에서 열린 벚꽃가요제에 참가해 동상을 받았다. 가요제 무대와 지역 행사를 돌며 자신을 알렸고, 군산의 직장인 록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트로트뿐 아니라 밴드 사운드까지 소화했다. 전국 단위 가요제에서도 여러 차례 입상하며 꾸준히 무대 경험을 쌓았다.
무대를 향한 걸음은 스무 살 무렵 멈춰 섰다. 알 수 없는 신병이 찾아오면서 노래를 이어갈 수 없었고, 가수의 꿈은 중단됐다. 신병으로 가족과 떨어져 10년을 홀로 지내는 동안 노래는 손에서 멀어졌다. 신내림을 받아들여 무속인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는 약 7년이 더 걸렸다. 무당이 노래한다는 일을 스스로도 쉽게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무대에 오른 계기는 2025년 8월 13일 KBS1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였다. 황찬희는 이 무대에서 무속인이라는 신분을 처음 공개하고 '곡예사의 첫사랑'을 불렀다. 신을 모시는 사람이 가요 무대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은 방청석과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 출연을 계기로 가수 황찬희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황찬희를 대표하는 무대는 '곡예사의 첫사랑'이다.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부른 이 곡은 서커스단 곡예사의 사랑과 애환을 담은 트로트로, 황찬희의 성량과 감정 표현이 그대로 드러난 선곡이었다. 무당이라는 신분을 처음 공개한 자리에서 고른 노래라는 점에서, 가수로 다시 서겠다는 다짐을 담은 무대이기도 했다.
음악 이력은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중학생 때 라디오 노래자랑 장원, 스무 살의 벚꽃가요제 동상처럼 가요제 무대에서 출발해, 군산의 직장인 록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며 밴드 음악까지 경험했다. 트로트의 꺾기와 밴드 보컬의 성량을 함께 익힌 셈이라, 발라드부터 트로트, 록까지 폭넓게 소화하는 바탕이 됐다.



현재 황찬희의 노래 활동은 군산시민예술단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지역 예술단 공연과 가요제, 방송 무대를 오가며 트로트 레퍼토리를 넓히고 있다. 신을 모시는 일과 노래를 병행하는 만큼 무대가 잦지는 않지만, 아침마당 출연 이후 무속인 가수로서의 공연 요청이 이어지며 무대에 서는 자리가 늘고 있다.



황찬희는 기혼으로, 남편과 아들, 딸을 둔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남편은 연예계와 무관한 일반인이라 신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 신병으로 가족과 떨어져 10년을 홀로 지낸 뒤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결혼했고, 긴 방황 끝에 가정을 이뤘다는 점에서 결혼은 황찬희의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고향에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한동안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신병 증상도 가라앉아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노래와 멀어진 채 아내이자 엄마로 지내는 생활이 이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10년과 비교하면 결혼 이후의 몇 해는 황찬희가 가장 안정됐던 시기였다.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생활 중 신병이 다시 찾아왔고,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과 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다. 결국 신내림을 받아들여 무속인의 길을 택하면서 가족도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남편과 자녀는 황찬희가 무당과 가수를 병행하는 지금의 삶을 곁에서 지지하고 있다.



MBN 특종세상은 황찬희가 가수의 꿈을 접고 무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신병은 스무 살 무렵 가수 활동을 눈앞에 두고 시작됐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가족과 함께 지내기조차 어려워진 황찬희는 집을 떠나 10년을 홀로 버텼다. 노래도, 가족도 모두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증상은 잠시 가라앉았지만, 신병은 다시 황찬희를 찾아왔다. 피하려 할수록 주변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심근경색과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딸이 크게 앓았으며, 어머니의 건강까지 나빠졌다. 더는 신을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황찬희는 신내림을 받아들여 작두를 타는 무당의 길로 들어섰다.



무당이 된 뒤에도 노래를 향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무속인이 무대에 선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아역배우 출신 무속인 이건주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냈다. 시대와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느낀 황찬희는 신을 모시면서 가수로도 다시 도전했고, 작두 타는 무당이자 무대 위 가수라는 두 삶을 함께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