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조 나이 | 가수 조항조 가족 부인 본명
조항조 나이 | 가수 조항조 아버지 가족 부인
- 조항조 나이





조항조는 오랜 기간 프로필상 출생연도가 1959년으로 적혀 있었으나, 2026년 3월 21일 MBN '한밤' 방송에서 실제 출생연도가 1953년이라고 직접 밝혔다. 1954년생 코미디언 김학래가 말을 놓고 1958년생 홍서범이 형이라 부르던 상황이 출생연도 정정으로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조항조의 가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아버지와의 관계다.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가정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음악을 하고 싶던 아들과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던 아버지 사이에 갈등이 깊었고, 한동안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고 여러 방송에서 털어놓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가수의 길을 말린 것이 자식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식구들의 끼니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시절 병환 중인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일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노래하던 새벽,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에 오래 박혀, 방송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뒤늦게 성공을 거두고도 좋은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여러 차례 입에 올렸다.



조항조의 음악 인생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광운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도 미8군 무대와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을 돌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1978년 그룹 '서기 1999년'의 보컬로 정식 데뷔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1983년부터 활동한 밴드 '코리아 환타지'에서도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무대와 생활고 사이를 오갔다.
1987년에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현지에서 '뉴 웨이브 밴드'를 꾸려 음악의 끈을 놓지 않다가, 친구 유현상의 권유로 1990년 무렵 귀국해 솔로 음반을 냈다. 그러나 소속사 지원이 끊기면서 약 20년에 이르는 긴 무명 생활로 접어들었다.



전환점은 작곡가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발라드에 머물던 방향을 트로트로 돌리면서 1997년 '남자라는 이유로'를 내놓았다. 데뷔 20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IMF 외환위기로 주저앉은 가장들의 심정을 파고든 노래가 터지면서, 마흔을 넘긴 나이에 정상급 트로트 가수로 올라섰다.



조항조를 국민가수 반열에 올린 곡은 1997년 '남자라는 이유로'다. 외환위기 시절 가장들의 애환을 담은 가사가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어 2000년 '사나이 눈물', 2005년 '만약에'와 '거짓말', 2010년 '가지마'로 트로트 팬층을 다졌다. 2013년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OST '사랑찾아 인생찾아'와 2014년 '사랑꽃'은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는 다리가 됐다.
2017년 발표한 '고맙소'는 가족과 배우자, 친구에게 감사를 전하는 가사로 축가와 헌정곡 자리를 꿰찼다. 2020년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리메이크하면서 원곡 검색량이 치솟았고, '미스터트롯'과 '불타는 트롯맨' 무대의 단골 선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19년 '후', 2023년 '낭만 탱고', 2025년 '아버지란 그 이름'까지 신곡 발표를 멈추지 않는다.


'옹이'는 나무의 옹이에 마음의 흉터를 빗댄 곡으로, 감정을 절제한 창법이 가사의 무게를 그대로 살린다. '거짓말'은 떠난 사랑을 향한 회한을 담아 노래방 인기곡으로 오래 남았고, 조항조를 '거짓말 가수'로 부르는 별칭까지 붙었다.


조항조의 성공 뒤에는 아내 홍숙재의 헌신이 있다. 미국 교포였던 홍숙재는 조항조의 이모 소개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편지를 주고받았고,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마음을 키워 연인으로 발전했다. 전화와 편지로 쌓은 시간이 결혼으로 가는 밑바탕이 됐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조항조는 이름 없는 무명 가수였던 탓에 주변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홍숙재는 흔들리지 않고 결혼을 택했고, 살림이 쪼들리는 와중에도 묵묵히 남편을 응원하며 가정을 지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한 명이 있으며, 오랜 생활고를 함께 견딘 세월이 부부의 바탕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국 이민 시절 음악을 접으려던 조항조에게 홍숙재가 한국행 비행기표를 건네며 다시 무대로 떠민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조항조는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조항조도 없었을 것"이라며 여러 인터뷰에서 감사를 표했다. 아내의 결단 한 번이 주저앉았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