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별세 | 강헌 명리학 명리학자 강헌 음악평론가 별세
- 강헌 별세



대중음악평론가이자 명리학자로 활동한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64세다. 문화계에 따르면 강 이사장은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음악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읽어내고, 대중문화의 흐름을 기록해 온 인물이다.



대중음악평론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영화 제작과 시나리오 집필, 대학 강의, 음악극 기획, 문화예술 행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대중음악을 단순한 유행이나 오락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했다.
오랜 기간 글과 강의를 통해 대중음악사를 소개하고 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강헌은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소설가를 꿈꾸며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음악과 영화 등 여러 문화예술 분야로 관심을 넓혔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영화계에 뛰어들어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했다.
당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아낸 영화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 제작에 참여했다. 상업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와 '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텔레비전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도 집필했다.



영화와 문학, 음악을 넘나든 경험은 이후 대중문화를 폭넓게 해석하는 기반이 됐다. 고인은 자신의 자를 '산만', 호를 '의박'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보였으며 특유의 입담으로도 알려졌다.



강헌이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가수 김현식에 관한 평론이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쓴 '김현식론: 통기타에서 블루노트까지'를 계기로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동료 평론가 임진모와 함께 여러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했다.
당시 대중음악계에서는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동료들과 함께 '예감', '상상', '리뷰' 등 문화계간지를 만들며 문화비평의 영역을 넓혔고, 홍익대와 성공회대, 단국대, 성균관대 등에서 대중음악사를 약 20년간 가르쳤다.



콘서트 '자유'와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등을 기획했으며 음악극 '끝나지 않는 노래'와 '천변살롱' 등을 통해 음악을 무대예술로 확장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저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는 음악사의 주요 장면을 사회적 변화와 연결해 설명했으며,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 속 대중문화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봤다.



강헌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42세 무렵 찾아왔다. 대동맥이 찢어지는 위기를 겪으며 2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뒤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악과 대중문화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삶과 운명에 관한 관심까지 넓힌 것이다.



2015년에는 명리학을 다룬 저서 '명리: 운명을 읽다'를 출간했다. 명리학을 통해 운명을 해석하고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도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해 온 셈이다. 대중음악평론가로 쌓은 문화적 통찰과 명리학에 관한 관심은 고인의 활동을 설명하는 또 다른 축으로 남았다.



강헌은 평론가와 창작자를 넘어 문화예술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5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됐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 문화기관을 이끌며 문화예술교육 발전에 힘을 보탰다. 음악과 영화, 출판과 교육, 문화행정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온 강헌은 대중문화의 의미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이를 글과 강의, 공연으로 전달해 왔다.



20일 전해진 별세 소식에 문화계는 고인의 삶과 업적을 돌아보게 됐다. 대중음악을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문화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강헌의 활동은 그가 남긴 저서와 비평, 교육과 기획 작업을 통해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