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별세 | 최형우 전 내무장관 별세
-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별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혔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안경률 전 국회의원 등에 따르면 최 전 장관은 이날 오전 3시 30분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4·19혁명에 참여한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국회의원 6선과 정무제1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97년에는 대선 주자로 거론됐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최형우 전 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60년 4·19혁명 당시 학생 대표로 활동하며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1968년에는 4·19 및 6·3 범청년 조직에서 사무총장을 맡았고,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 움직임에 맞서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해 처음 당선됐다. 이후 제9대와 제10대, 제13대부터 제15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내며 모두 6선에 올랐다. 유신체제와 신군부 집권기를 거치며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야권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



최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도동계의 핵심 인사였다. 고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릴 정도로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최 전 장관은 조직을, 김 전 장관은 자금과 관련된 역할을 맡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고락을 함께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 이후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으며,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는 의원직을 잃었다.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에도 군 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1981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 원내총무 등을 역임하며 야권의 주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최 전 장관은 여당에 합류했다. 이후 정무제1장관을 지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뒤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 등을 맡았다. 오랜 기간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한 만큼 문민정부 출범 과정에서도 주요 인사로 활동했다.
1997년에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이후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정치권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동료와 지인들이 간간이 교류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최 전 장관의 별세로 상도동계의 주요 인사 가운데 한 명이 세상을 떠나게 됐다. 민주화 운동과 정당 정치, 문민정부의 주요 직책을 거친 고인의 정치 이력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일씨와 2남 2녀인 최석균·최제완·최은지·최은실씨가 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례위원장에는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이 참여하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4·19혁명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해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국회의원 6선과 정부 주요 직책을 지낸 최 전 장관은 오랜 투병 끝에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