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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도난 사건 현충사 | 유근필 난중일기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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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포대믹 2026. 10. 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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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9
난중일기 도난 사건 현충사 | 유근필 난중일기 범인

난중일기 도난 사건 현충사 | 유근필 난중일기 범인

- 난중일기 도난 사건

 

난중일기 도난 사건

1967년 12월 31일 밤,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친필 기록인 난중일기가 도난당했습니다. 당시 난중일기는 현충사 유물관에 보관돼 있었으며, 범인들은 난중일기와 함께 충무공 관련 유물과 기록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난중일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쟁 상황과 심경을 담은 귀중한 기록이 범죄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수사 결과 범인들은 문화재를 해외에 판매해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일본에 팔기 위해 난중일기를 훔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난중일기 도난 범인 유근필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은 유근필입니다. 1968년 1월 제작된 대한뉴스 제658호에도 유근필이 주범으로 등장합니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유근필은 문화재 절도 전력이 있었으며, 전직 중학교 교감이었다는 내용도 전해집니다.

 

 이번 범행은 혼자 저지른 일이 아니라 유근필을 중심으로 한 일당이 문화재를 훔쳐 판매하려 했던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난중일기는 단순한 고서가 아니라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그러나 범인들은 기록의 역사적 가치보다 판매를 통한 이익에 관심을 뒀습니다. 일본의 구체적인 구매자가 누구였는지, 거래 조건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확인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난중일기가 해외로 반출될 위험에 놓였고, 실제 반출 전에 회수됐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특별 담화와 수사의 전환점

난중일기 도난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은 범인 검거와 문화재 회수를 위한 수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68년 1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발표하며 범인 검거와 난중일기 회수에 대한 적극적인 제보를 요청했습니다. 

 

국보가 도난당하고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사건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담화를 발표할 정도로 문화재의 중요성과 사건의 심각성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 담화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왔습니다. 수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범인의 주변 인물이 제공한 전화 제보가 난중일기의 행방을 밝혀내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난중일기를 되찾은 결정적 인물은 범인 조카

1968년 1월 9일, 난중일기의 행방을 알리는 전화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제보자는 주범 유근필의 조카인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범행에 연루된 일당과 연결된 인물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셈입니다. 

 

이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은 범인들을 검거하고 난중일기를 되찾았습니다. 2023년 발표된 학술논문에서도 1968년 1월 9일 범인 검거와 난중일기 회수로 사건이 해결됐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1967년 12월 31일 도난 사건이 발생한 뒤 약 열흘 만에 국보가 돌아온 것입니다. 어린 학생의 전화 한 통이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문화재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전개는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일본 유출 위기 넘긴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1968년 1월 9일 회수돼 일본으로 반출되는 위기를 넘겼습니다. 1월 19일 제작된 대한뉴스 제658호에도 범인 검거와 문화재 회수 과정이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난중일기가 해외로 넘어갈 위기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1930년대에도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이종옥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난중일기의 처분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1932년에는 난중일기를 지키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이 진행됐습니다. 이후 약 35년 만에 다시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서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이 부각됐습니다. 

 

난중일기는 현재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보관돼 있으며, 친필 초고는 7책 205장으로 전해집니다. 2008년에는 도난과 훼손에 대비해 관련 기록을 영인하는 등 보존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난중일기 도난 사건은 문화재를 노린 범죄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적 기록을 지키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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