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미 독립운동가 허석 후손
- 허미미 독립운동가 허석 후손



일본에서 태어나 유도를 시작한 소녀가 한국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2026년 일본에서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여자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의 이야기입니다. 허미미의 금메달이 특별한 이유는 기록이나 경기 결과에만 있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선택한 한국행,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독립운동가 집안의 역사가 선수 생활에 의미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1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재일교포 3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도를 시작했고, 일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에는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 여자 52kg급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와세다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했습니다. 일본에서 유망주로 성장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인생의 방향을 바꾼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는 허미미에게 한국 국가대표로 뛰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남겼습니다. 허미미는 할머니의 바람을 마음에 새겼고, 일본 국적을 정리한 뒤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합류해 한국 선수로 새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한국행은 단순히 소속 국가를 바꾸는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쌓아온 선수 생활의 기반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경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허미미는 한국 대표팀에서 훈련하며 국제무대에 도전했고, 마침내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성장했습니다. 할머니의 유언은 허미미가 한국을 선택한 출발점이 됐고, 그 선택은 훗날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특별한 가족사와 연결되며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허미미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집안이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허석 의사는 허미미의 선조로,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허미미가 한국 대표로 뛰게 된 배경에 독립운동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울림을 줬습니다.
허석 의사는 1857년 경상도 의흥현 소수면 가곡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일대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현실을 안타까워했던 허석 의사는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 동포들의 항일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1918년 8월 무렵에는 마을 인근 도로에 세워진 비석에 항일 격문을 붙였습니다. 격문에는 나라를 잃은 백성의 고통과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가 담겼습니다. 허석 의사는 이를 통해 동포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하려 했지만, 결국 일제의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습니다.



허석 의사는 1919년 고종의 승하 이후 사당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터를 정리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같은 해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뜻을 행동으로 옮겼던 그는 옥고를 치른 뒤 1920년 4월 22일 만기 출옥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4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옥중 생활로 얻은 병과 후유증이 원인이었습니다.



허석 의사의 독립운동 공적은 사후에 인정받았습니다. 198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으며,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습니다. 고향인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는 허석 의사의 삶과 순국을 기리는 기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허미미의 가족사는 이처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선조의 역사와 이어져 있습니다.


허미미는 2024년 파리올림픽 여자 유도 57kg급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결승에서 캐나다의 크리스타 데구치에게 패해 금메달을 놓쳤지만, 한국 대표로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어깨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도 다음 목표를 향한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둔 허미미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파리에서 놓친 금메달을 따 할머니 묘비에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여자 유도 57kg급 결승에서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경기 시작 12초 만에 업어치기로 유효를 얻은 뒤 리드를 지켜 금메달을 확정했습니다.


허미미가 금메달을 목에 건 장소는 자신이 태어난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고, 시상식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쳐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던 아쉬움도 이번 우승으로 달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금메달은 허미미에게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한국 국가대표가 됐고, 파리올림픽 은메달과 부상 재활을 거쳐 마침내 금메달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의 후손이라는 가족의 역사도 함께했습니다.


허미미에게 태극마크는 할머니의 바람에서 시작된 선택이자, 한국 선수로서 이어온 도전의 상징입니다. 이제 금메달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약속의 결실이 됐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유도 선수의 한국행은 한 가족의 유언에서 출발했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많은 사람에게 기억될 이야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