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레나 프로필 | 김세레나 가수 나이 남편 아들
- 김세레나 프로필





김세레나는 11월 5일 오후 9시 10분 방송되는 MBN '특종세상'에 출연해 매니저로 함께 일하는 둘째 아들과의 갈등을 털어놓는다. 아들은 어머니의 잦은 술자리와 거듭된 사기 피해를 걱정해 만나는 사람까지 확인하고, 김세레나는 그런 간섭이 못마땅하다. 본명은 김희숙으로, 천주교 세례명 '세레나'를 예명으로 삼았다. 1964년 데뷔해 62년째 활동하며 10월에도 경북 영주 용수사 산사음악회와 논산 구자곡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행사 무대에 올랐다.



김세레나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4년 12월 동아방송 '가요백일장' 연말결선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나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6·25 전쟁 피란길에 대전을 거쳐 충남 논산에 정착했고,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논산에서 노래로 이름이 났다. 쌘뽈여고에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박초월 명창에게 창법을 배우며 민요를 대중가요로 부르는 신민요의 길을 걸었다.
김세레나의 히트곡은 1967년 '새타령', 1968년 '갑돌이와 갑순이', 1969년 '꽃타령'·'까투리사냥'·'성주풀이', 1971년 '창부타령'·'울릉도사랑'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 '태평가', '남원산성', '천안삼거리', '신만고강산'도 대표곡으로 꼽힌다. 무대에서는 마이크를 한 손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잡는 동작을 선보였는데, 민요를 지루해하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만든 퍼포먼스다.



김세레나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보가수'라는 별칭을 붙였고, 전두환·노태우·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앞에서도 노래했다. 박 전 대통령의 관심 탓에 육영수 여사의 눈 밖에 나 방송 3사 출연 금지 위기를 겪었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나서 막았다. 국어순화운동 때는 외국식 예명을 쓰지 말라는 압력에 '김세나'로 활동했다. 2001년 대통령표창 선행연예인 부문, 2002년 제17회 골든디스크 공로상을 받았다.



김세레나의 첫 결혼은 21살 때였다. 인기가 막 오르던 시기, 번 돈을 집에 맡겨도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어 가족에게 배신감과 외로움을 느끼던 참이었다.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미 기울어 있었다. 지방 공연에서 만난 밴드 멤버는 폐병을 앓으며 악기까지 빌려 쓰는 처지였다. 김세레나는 먹을 것과 악기를 사주며 챙겼고, "동정심이 애정과 사랑으로 변했다"며 결혼에 이른 과정을 설명했다.
김세레나는 결혼 뒤 경제권을 남편에게 모두 맡겼다. 남편은 늘 돈이 모자란다고 했고, 전화가 오면 숨어서 받았다. 몰래 엿들은 통화에서는 "전화하지 마, 집사람이 눈치챌 것 같아"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따져 묻자 남편에게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고 법적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혼인신고가 다 돼 있는 줄 알았다"던 김세레나는 그 아내를 직접 만나 이혼해 주면 생활비를 대겠다고 제안했다.



김세레나는 이후 목돈까지 요구받자 이혼을 결심했지만, 남편은 이혼이 연예인에게 큰 흠이던 시절을 이용해 협박했다. 결국 아들 양육권만 받는 조건으로 전 재산을 넘겼고, 결혼반지 하나 받지 못한 채 5년 6개월 만에 갈라섰다. 실제로 함께 산 기간은 2년 반이었다. 2025년 1월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너무 어릴 때 결혼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며 이 사연을 털어놨다.



김세레나는 첫 이혼 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4년 만에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이번에도 계기는 동정이었다. 한겨울에 얇은 여름옷을 입은 남자를 보고 마음이 기울었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말리면 더 하고 싶은 게 있다. 기를 쓰고 또 했다"고 돌아봤다. 스스로를 두고는 "불쌍한 남자를 보니 콩깍지가 씌었다. 그게 푼수다"라고 말했고, "안 돼 보이면 막 동정을 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김세레나의 두 번째 남편은 도박에 빠진 노름꾼이었다. 김세레나는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감당이 안 됐다. 문제 많은 남자"였다고 기억한다. 이혼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은 첫 남편처럼 협박하는 태도로 돌변했다. 아들을 빌미로 금전을 요구했고, 김세레나는 자동차와 돈, 살림살이를 내주며 "남자한테 위자료를 두 번 줬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이를 내주지 않자 몰래 데려와 직접 키웠다.



김세레나는 2018년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남편 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 내 팔자에는 같이 갈 남편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방송에서 아이돌 그룹 출신 사업가인 아들 진의남은 "왜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고민했다"며 사춘기 방황을 고백했고, 모자는 관계 회복을 위해 일본 여행을 떠났다. 김세레나는 지금 "다시는 결혼 안 한다. 아들 둘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김세레나와 소설가 김홍신은 1947년생 동갑이다. 김세레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논산에서 자랐고, 김홍신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 반월동에서 성장했다. 김세레나는 강경중앙초와 강경여중을, 김홍신은 논산대건중·고를 다녔다. 같은 논산에서 자란 동향이라는 공통점이 두 사람의 인연을 오래 이어 준 끈이 됐다. 김세레나는 김홍신을 두고 "남남이지만 항상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 마음의 남편"이라고 표현했다.
김세레나는 2022년 7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논산 김홍신문학관을 찾아가 "보고 싶었어요"라며 김홍신을 맞았다. "우리는 남남이지만 부부다. 만나면 여보, 당신이라고 하고 옆자리에 늘 앉는다"고 소개했고, 김홍신은 "장난으로 모임에서 부부 같다고 하니 잘못 알아듣는 사람이 생기더라"고 해명했다. 긴장한 김홍신을 보며 김세레나는 "여보, 당신 하는 게 방송에 나가니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세레나는 김홍신을 "1등 남편감"이라 부르며 "자상하고 진심이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카리스마도 있고 유머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작 만났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만나서 아쉽다"며 "정석으로 제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걸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김홍신은 11월 7일 논산 김홍신문학관에서 등단 50주년 문학제를 연다. 10월 보관문화훈장 수훈과 142번째 책 '유다의 어머니' 출간을 함께 기념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