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항기 나이 프로필 | 윤향기 나이 가족 윤복희 오빠
- 윤항기 나이





윤항기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가수이자 작곡가다. 그는 희극인이자 작곡가였던 아버지 윤부길과 무용수 어머니 성경자 사이에서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음악학 석사와 신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윤항기는 1959년 에이원쇼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불과 16세의 나이였으며, 아버지 윤부길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 자연스럽게 가수의 길로 이어졌다. 1960년에는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악대에서 복무하며 음악적 역량을 더욱 키워갔다.



제대 후인 1964년,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록 그룹으로 불리는 키보이스를 결성하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키보이스는 당시 한국의 비틀즈라 불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86년 돌연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윤항기의 대표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키보이스 시절 발표한 '정든 배'(1969년)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추억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솔로 전향 이후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1971년)를 발표하며 서정적인 감성의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75년에는 '장미빛 스카프'로 또 한 번 히트를 기록하며 최정상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뛰어난 작곡 능력으로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들어 불렀다는 점이 특별하다. 1980년에 발표한 '나는 행복합니다'는 한화 이글스의 응원가로 채택되어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곡이 되었다. 또한 '해변으로 가요'는 여름 시즌 대표곡으로 자리잡아 무더운 계절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로 남아있다.


윤항기는 정경신 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윤준호와 딸 윤의숙을 두고 있다. 결혼 당시 처가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인이 방송에서 "재떨이에 맞았던 흉터가 아직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부부는 5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금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 윤준호는 CCM(기독교 음악) 가수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았다.



윤항기의 가족사를 보면 예술 가문의 면모가 뚜렷하다. 아버지 윤부길은 한국 최초의 희극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고, 어머니 성경자는 무용수였다. 여동생 윤복희 역시 배우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형 윤영기와 누나 윤수현까지 포함하면 온 가족이 예술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2014년 가수로 복귀한 이후 윤항기는 각종 TV 프로그램과 콘서트 무대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만 82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그의 모습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으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으로도 활동하며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윤항기는 가수와 목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음악과 신앙을 결합한 활동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으로서 기독교계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학장직도 맡아 젊은 예술인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